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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8

R.J.팔라시오 [원더] 책 리뷰 내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무도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 p.10 「원더」는 선천적으로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난 어거스트 풀먼이라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짧은 에피스드들을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풀어나가지만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거스트가 있다. 초등학생 때 같은 학년이었던 한 남매가 있었다. 그 애들이 쌍둥이였는지는 모르겠다. 한번도 그 아이들을 쌍둥이라는 단어와 연관지어 떠올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들은 남매이면서 한 학년이었고 불우한 가정탓인지 항상 어딘가 지저분하고 촌스러워 보였다.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아이의 이야기인 원더를 읽는 동안 그 아이들이 떠올랐다. 어린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나는 멍청했고 나밖에 몰랐으며 내가 누군가를 무시하고 거부감을 나타내면 .. 2018. 3. 1.
B.A.패리스 [비하인드 도어] 책 리뷰 공포야말로 최고의 재갈이다. - p.112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그레이스를 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리둥절하다. 싸이코패스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사전정보없이 읽었다면 더욱 순수한 흥미를 느꼈을 것 같다. 잭은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의 표정, 느낌, 냄새를 사랑하는 싸이코패스다. 잭 엔젤이라니 싸이코패스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그는 소설 내내 아내인 그레이스의 따귀 한 번 때리는 일 없이 아내는 물론 독자들의 공포까지 완벽하게 통제한다. 오로지 정신적인 공포만으로도 이토록 쫄깃한 소설은 만들어 진다.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공포를 주입할 수 있는 사람. 계속 숨겨둘 수 있는 사람. 아무도 .. 2018. 2. 23.
타티아나 드 로즈네 [사라의 열쇠] 책 리뷰 "벨로드롬 디베르 일제 검거. 줄여서 벨디브라고 해. 사이클 경기가 열리던 유명한 실내 경기장이야. 유대인 수천 명이 그곳에서 며칠을 처참하게 지내다 아우슈비츠로 이송돼 가스실로 직행했어." - p.54 1942년에서 2002년으로 이어지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라의 열쇠」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진 어느날 발견한 책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프랑스에서 프랑스국민에 의해 행해진 유대인 학살을 소재로 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를 몇 편 보긴 했었지만 ㅡ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ㅡ 벨디브 일제 검거 사건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과거의 사건을 알리고 .. 2018. 2. 17.
김애란 [비행운] 책 리뷰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 - p.251 「비행운」은 어딘가 끈적끈적하고 우울한 내용의 단편소설로 가득 채워진 책이다. 어떤 이야기는 화자가 미쳐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히스테릭한 행동을 보이거나 극적인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다른 이야기는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있는 소재와 전개로 내게 더욱 비참하고 씁쓸한 기분을 맛보게 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여유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서민 혹은 그 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길 희망하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도, 꿈이 있던 순수한 과거를 작은 뿔씨삼아 살아.. 2018. 2. 2.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책 리뷰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 별에는 인간이라는 괴물이 있어. - p.534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재밌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한 권 읽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제노사이드」는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듯한 소설로, 688페이지라는 두꺼운 책을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읽어냈다. 하지만 점점 진도를 나갈수록 더 의미 있고 무거운 무언가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작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잔학함과 권력자의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불필요한 전쟁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는데 이는 2장 '네메시스'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역사 속 실제 사례를 들어 인간의 잔인함을 언급했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노예제도라는 이름 하에 죽어간 아프리카인들, 일본인이 저지른 극동아시아에서의 무.. 2018. 2. 2.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책 리뷰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 p.97 바이러스나 핵폭발에 의한 지구 종말을 그린 소설은 차고 넘치게 많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그 클리셰를 선택한 「해가 지는 곳으로」는 종말 그 자체가 아닌 그 속의 다른 무언가에 초점을 맞췄다. 당장 내일을 확신할 수 없다는 걸 빼면 소설 속과 현실에서의 삶이 다를 게 뭔가? 약육강식. 각자도생. 승자독식. 우리는 소설 속이 아니라도 이미 치열하고 숨 가쁘게 살고 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잊고 있는 게 있을 텐데? 지킬 것을 지키고 경계할 것을 경계하고 함부로 사람을 믿지 않는 것.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되더라도 수치심만은 간직하는 것. 오늘 내가 살아 있음에 의문을 품는 것. 한.. 2018. 2. 2.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책 리뷰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은 딱히 특별할게 없는 책이다. 뻔한 내용이다. 그래서 일명 '하이퍼리얼리즘'. 거의 대부분의 여성의 일상이 저렇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흠칫흠칫 놀라거나 화를 내거나 때로 울음이 나오는 이유는 이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겪어왔던 여성혐오라는 일상을 제 3자의 시점으로 접하게 됨으로써 이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얼마나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를 여과 없이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많이 읽히고 공감을 얻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살면서 흔하게 겪지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라 어디에 유난스럽게 하소연할 수도, 크게 울음소리를 낼 수도 없던 일들을 보면서 '맞아, 나도 나도.',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같은 생각을 하며 마치 동지를 얻은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 2018. 2. 2.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책 리뷰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되는 이 책은 그저 한 인간의 지질한 인생을 나열해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책을 놓지 못하고 몰입해서 읽게 되는 까닭은, 인간으로 살기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주인공에게서 느껴지는 동질감 때문이다. 주인공, 즉 요조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공포를 느끼며 그들에게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선뜻 외톨이가 될 용기도 없는 유약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그는 인간과 섞이려고,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다. 매일 주변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에게 밝고 친절한 '사람'으로 비치는 데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그를 보며, 자기 자신을 떠올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고있는 어두운 면이 아닐까... 2018.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