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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12

R.J.팔라시오 [원더] 책 리뷰 내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무도 나를 평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 p.10 「원더」는 선천적으로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난 어거스트 풀먼이라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짧은 에피스드들을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에서 풀어나가지만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거스트가 있다. 초등학생 때 같은 학년이었던 한 남매가 있었다. 그 애들이 쌍둥이였는지는 모르겠다. 한번도 그 아이들을 쌍둥이라는 단어와 연관지어 떠올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들은 남매이면서 한 학년이었고 불우한 가정탓인지 항상 어딘가 지저분하고 촌스러워 보였다.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아이의 이야기인 원더를 읽는 동안 그 아이들이 떠올랐다. 어린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나는 멍청했고 나밖에 몰랐으며 내가 누군가를 무시하고 거부감을 나타내면 .. 2018. 3. 1.
B.A.패리스 [비하인드 도어] 책 리뷰 공포야말로 최고의 재갈이다. - p.112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그레이스를 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리둥절하다. 싸이코패스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사전정보없이 읽었다면 더욱 순수한 흥미를 느꼈을 것 같다. 잭은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의 표정, 느낌, 냄새를 사랑하는 싸이코패스다. 잭 엔젤이라니 싸이코패스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그는 소설 내내 아내인 그레이스의 따귀 한 번 때리는 일 없이 아내는 물론 독자들의 공포까지 완벽하게 통제한다. 오로지 정신적인 공포만으로도 이토록 쫄깃한 소설은 만들어 진다.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공포를 주입할 수 있는 사람. 계속 숨겨둘 수 있는 사람. 아무도 .. 2018. 2. 23.
타티아나 드 로즈네 [사라의 열쇠] 책 리뷰 "벨로드롬 디베르 일제 검거. 줄여서 벨디브라고 해. 사이클 경기가 열리던 유명한 실내 경기장이야. 유대인 수천 명이 그곳에서 며칠을 처참하게 지내다 아우슈비츠로 이송돼 가스실로 직행했어." - p.54 1942년에서 2002년으로 이어지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라의 열쇠」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진 어느날 발견한 책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프랑스에서 프랑스국민에 의해 행해진 유대인 학살을 소재로 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를 몇 편 보긴 했었지만 ㅡ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ㅡ 벨디브 일제 검거 사건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과거의 사건을 알리고 .. 2018. 2. 17.
최재천 [인간과 동물] 책 리뷰 자연을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알고 배우다 보면 우리 자신을 더 사랑하고 다른 동물이나 식물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밖에 없는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p.372 작년에 인터넷을 떠돌다가 최재천이라는 분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교수님께 굉장히 감동하고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어 부랴부랴 그 분의 책 중 하나를 구입하게 됐다. 비록 다른 책들에 밀려 이제서야 읽기는 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커지게 된 것을 느낀다. 어릴 때 이라는 동물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을 즐겨봤던 기억이 있다. 워낙 어릴 때라 거기서 봤던 내용까지는 남아있지 않지만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다루었던 방송이라는 것 정도는 기억.. 2018. 2. 11.
김애란 [비행운] 책 리뷰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 - p.251 「비행운」은 어딘가 끈적끈적하고 우울한 내용의 단편소설로 가득 채워진 책이다. 어떤 이야기는 화자가 미쳐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히스테릭한 행동을 보이거나 극적인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다른 이야기는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있는 소재와 전개로 내게 더욱 비참하고 씁쓸한 기분을 맛보게 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여유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서민 혹은 그 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길 희망하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도, 꿈이 있던 순수한 과거를 작은 뿔씨삼아 살아.. 2018. 2. 2.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책 리뷰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 별에는 인간이라는 괴물이 있어. - p.534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재밌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한 권 읽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제노사이드」는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듯한 소설로, 688페이지라는 두꺼운 책을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읽어냈다. 하지만 점점 진도를 나갈수록 더 의미 있고 무거운 무언가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작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잔학함과 권력자의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불필요한 전쟁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는데 이는 2장 '네메시스'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역사 속 실제 사례를 들어 인간의 잔인함을 언급했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노예제도라는 이름 하에 죽어간 아프리카인들, 일본인이 저지른 극동아시아에서의 무.. 2018. 2. 2.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책 리뷰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 p.157 산문집인데 어쩐지 시집같아 그 안에 담긴 뜻을 깊게 헤아리고 싶어서 문장을 자꾸 곱씹으며 읽었다. 아직 시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나쁜 버릇일지도 모른다. 무덤덤을 가장한 작가의 깊은 감정이 가득 담겨있는 책이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도, 또 반가워하기에도 좋은 글이다. 책 속에 유독 죽음에 관한 글이 많았다. 읽으면서 나도 죽은 어떤 이를 생각하느라 많이 슬프고 조금 반가웠다. 특히 이 구절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어 짧은 글인데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나도 너에게 그 따듯한 밥 한 숟가락을 먹여 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어찌되었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2018. 2. 2.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책 리뷰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 p.97 바이러스나 핵폭발에 의한 지구 종말을 그린 소설은 차고 넘치게 많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그 클리셰를 선택한 「해가 지는 곳으로」는 종말 그 자체가 아닌 그 속의 다른 무언가에 초점을 맞췄다. 당장 내일을 확신할 수 없다는 걸 빼면 소설 속과 현실에서의 삶이 다를 게 뭔가? 약육강식. 각자도생. 승자독식. 우리는 소설 속이 아니라도 이미 치열하고 숨 가쁘게 살고 있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잊고 있는 게 있을 텐데? 지킬 것을 지키고 경계할 것을 경계하고 함부로 사람을 믿지 않는 것.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되더라도 수치심만은 간직하는 것. 오늘 내가 살아 있음에 의문을 품는 것. 한.. 2018. 2. 2.
마리 루티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책 리뷰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 사회에 고착돼 있는 성 고정관념("남자는 ㅇㅇ하고 여자는 ㅁㅁ하다."와 같은), 일명 젠더 프로파일링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에 가장 크게 일조한 진화심리학을 비판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어떤 논리로 그러한 고정관념을 만들어 냈는지, 그 이론들이 어떤 방식으로 '과학적'인 척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과학적이지 않은지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책 속에 거론된 진화심리학자들이 젠더 프로파일링의 증거라고 제시하는 자료들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자신들이 몇십년 동안 고수해 온 이론을 지키기 위해 왜곡된 결론을 내세운 채 '눈가리고 아웅' 한다. 내가 아는 한, 그 주장을 입증하는 데 쓰인 과학적 '방법'은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사실처럼 들리게 하는 것이다. - p.83 작가는.. 2018. 2. 2.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책 리뷰 "국가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한 마디로 대답하기는 쉽지않다. 심지어 여러 마디로도 어려울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국가, 통치자, 애국심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개념 등을 명쾌하게 이해시켜 준다. 자신이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관심을 갖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또는 정치가 뭔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란 무엇인가」의 초판을 발행한 유시민 작가는 2016년 일명 '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법 파괴 행위 사태를 보고 스스로에게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개정신판을 집필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와 통치자의 의의가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이를 강조한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2018.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