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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책 리뷰

by 깐마느리 2018. 2. 2.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난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 p.157

 

 

 

 

산문집인데 어쩐지 시집같아 그 안에 담긴 뜻을 깊게 헤아리고 싶어서 문장을 자꾸 곱씹으며 읽었다.

아직 시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나쁜 버릇일지도 모른다.

무덤덤을 가장한 작가의 깊은 감정이 가득 담겨있는 책이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도, 또 반가워하기에도 좋은 글이다.

 

 

 

책 속에 유독 죽음에 관한 글이 많았다. 읽으면서 나도 죽은 어떤 이를 생각하느라 많이 슬프고 조금 반가웠다.

 

 

 

 

특히 이 구절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어 짧은 글인데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나도 너에게 그 따듯한 밥 한 숟가락을 먹여 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어찌되었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 내가 먼저 죽어서 그들 때문에 슬퍼했던 마음들을 되갚아주고 싶다. - p.28

 

 

 

 

 

읽다보니 왠지 낯이 익어서 혹시나 하고 작가의 시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뒤져봤더니 아니나다를까.

형식은 좀 다르지만 내용이 같은 글이 시집에도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살펴보고 발견한 게, 산문집과 시집에 서로 다른 제목의 같은 글이 있고, 비슷한 제목의 다른 글이 있었다.

 

 

 

 

산문집의 <알맞은 시절>과 시집의 <낙서>가 전자에 해당하고,

산문집의 <해남에서 온 편지>와 시집의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가 후자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두 책을 다 읽고 서로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8점
박준 지음/난다
 

 

 

 

 


 

 

 

 

책 속 구절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 p.19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 p.19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 p.26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에도 어떤 정량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정량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나는 한번에 많은 인연을 지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 p.49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 p.63

 


 

밤이 가고 다시 아침이 온다. 마음속에 새로운 믿음의 자리를 만들어내기에 이만큼 좋은 때도 없다. - p.65

 


 

사랑의 세계에서는 소리가 들리는 방식이 다르다. 저녁이 가고 어둠이 밀려오는 속도가 다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이 다르고 새벽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서늘함이 다르다. - p.90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 p.110

 


 

지금 지나고 있는 이 길 위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들,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다가오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사이에서 경적 소리를 들어가며, 눈을 비벼가며, 손을 흔들기도 해가며 우리가 이렇게 스쳐간다. - p.170

 


 

시를 짓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이것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고 이 숱한 사라짐의 기록이 내가 쓰는 작품 속으로 곧잘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 p.181

 


 

어쩌면 유서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넘어 자신이 스스로의 죽음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것이므로.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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