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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사라의 열쇠] 책 리뷰

by 깐마느리 2018. 2. 17.

"벨로드롬 디베르 일제 검거. 줄여서 벨디브라고 해. 사이클 경기가 열리던 유명한 실내 경기장이야. 유대인 수천 명이 그곳에서 며칠을 처참하게 지내다 아우슈비츠로 이송돼 가스실로 직행했어." - p.54

 

 

 

 


 

 

 

 

1942년에서 2002년으로 이어지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있다.

「사라의 열쇠」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진 어느날 발견한 책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프랑스에서 프랑스국민에 의해 행해진 유대인 학살을 소재로 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를 몇 편 보긴 했었지만 ㅡ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ㅡ

벨디브 일제 검거 사건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과거의 사건을 알리고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쓰인 소설로

작가의 말에서 이를 더욱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적으로 허구다. 하지만 몇몇 사건은 실화다. 특히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1942년 여름에 일어났던 일들, 그 가운데서도 1942년 7월 16일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벨로드롬 디베르 일제 건거 사건은 허구가 아니다.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며, 역사서를 쓰려는 생각도 없었다. 벨디브로 끌려갔던 아이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살아남아 증언한 아이들에게 바치는.

 

 

 

소설의 중반까지는 이야기가 두 사람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1942년 벨디브 일제 검거 당시 프랑스 경찰의 손에 끌려갔던 너무도 어린 소녀 사라

2002년 벨디브 사건 60주년 기념식의 취재를 맡은 미국인 기자 줄리아.

 

 

 

두 시점이 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소설은 더욱 극적으로 흘러간다.

그러다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오로지 줄리아의 눈으로만 소설이 전개된다.

이는 아마 더이상 사라의 시점으로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최선인 줄 알았던 자신의 선택이 낳은 끔찍한 비극을 마주하고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뭔가를 받아들이고 내보낼 힘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스포주의▽

 

 

 

 

줄리아가 미국으로 사라를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는 답답한 마음에 짜증이 났다.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서 다른 나라로 떠나 연락도 끊은 사람에게 굳이 찾아가 아픈 기억을 다시 헤집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본인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자기 마음 후련하자고 남의 상처를 다시 쑤시고 벌리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테자크 가족들이 서로 반대되는 의견으로 다툰 걸 보면 작가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은 아닐 거라고 본다.

 

 

 

 

 

하지만 사라는 이미 없었고 아무것도 모른채 살고있던 그의 남편과 아들 윌리엄만 있었다.

윌리엄은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진실을 알게됨으로써 엄청난 충격에 고통받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또 한번 같은 생각이 들었다. 꼭 찾아가야만 했을까. 평화를 깨트려야만 했을까.

그냥 살게 뒀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 아주 조그맣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서야 그는 자신의 어머니의 진짜 속마음, 진정한 모습과 진정한 슬픔을 알게된 것이다.

이제 그는 남은 생애 동안 벨디브를, 아우슈비츠를, 유대인 학살에 대한 모든 것을 그저 스쳐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사라의 열쇠는 2010년 영화로 제작되어 한국에서는 2011년 8월 11일에 개봉되었다고 한다. 

 

 

 

 

실제 1942년 프랑스에서 이런 기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명, 단 한 번이라도 유대인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준 누군가가 있었기를.

 

 

 

 

Zakhor. Al Tichkah.

기억할지어다. 절대 잊지 말지어다. -  p.398

 

 

 

 

 

 

 

사라의 열쇠 - 8점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이은선 옮김/문학동네
 

 

 

 

 


 

 

 

 

책 속 구절

 

 

소녀는 블라우스 앞섶에 달린 노란 별 위에 손을 얹었다.

"이것 때문이죠? 끌려온 사람들 모두 이걸 달고 있잖아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서글프고 애처로운 미소였다.

"그래. 그것 때문이란다." - p.50

 


 

"아무도 벨디브의 아이들을 기억해주지 않아. 관심도 없고."

"올해에는 기억해줄 거예요. 올해는 다를지 몰라요." 내가 말했다.

노파는 쭈글쭈글한 입술을 오므렸다.

"아니. 알게 될 거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뭐하러 기억하겠어? 이 나라의 가장 어두운 과거인걸." - p.119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였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였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어떤 사람들을 미워하게 된 거였다. 노란 별을 단 사람들을. -p.145

 


 

가끔은 과거를 되돌아보기가 힘겨울 때도 있죠. 뜻밖의 불쾌한 사실들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더 힘든 일이잖아요. - p.198

 


 

"이번에도 나치의 희생자 운운하는군요."

(…)

"기억상실증의 완벽한 사례가 아닌가 싶은데요?" - p.230

 


 

"그렇습니다. 벨디브와 드랑시. 죽음으로 향하는 대기실 역할을 했던 그 모든 수용소를 프랑스 국민들이 조직하고 운영하고 감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공모 아래 이곳에서 대학살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 p.286

 


 

나는 내 인생이라는 영화를 앞으로 빠르게 돌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달리 방법이 없어 새 삶에 만족하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짓고, 허둥지둥 어설프게 모든 일을 해치우는 사람이 된 듯했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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